비움일기 : 친정집비우기 Day+4
예전부터 여러 종류의 공연을 가는 것을 즐겨했다. 그렇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자연스럽게 공연 팸플릿과 도록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이전에는 이것도 다 추억이고 기록이기에 다 가지고 있었는데, 지난 10년간 내가 갔던 공연도록들을 언젠가 다시 열어본 일이 있던가? 생각해보니 그냥 모아두기만 하고 딱히 다시 보진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몇몇 공연은 정말 인상 깊었기에 내가 내 삶에 가장 인상 깊었다고 생각하는 공연 5개의 도록만 남기고 나머지는 다 처분하기로 하고, 공연 티켓은 그 부피가 가장 작으니 티켓만 모으는 것으로 일단은 스스로 합의했다. 먼 미래에 나는 내가 비운 것들에 대해서 후회할 수도 있고, 지금 남긴 것 또한 다 비우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일단은 비우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다음부터는 공연이 정말 좋지 않은 이상에는, 내가 공연을 봤다는 행위를 증명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들고 오는 일은 더 이상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냥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그 벅찬 감정들을 블로그에 잘 써서 남기기로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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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 한구석에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오래된 잡지들과 전공책들 과 레포트들을 비워내기로 했다. 대학, 대학원 그리고 대학 연구원 시절까지 도합 7년간의 시간 동안 공부를 위해 많은 책들을 사고 또 인쇄했다. 이미 많은 부분 이사를 하며 버리고 정리했는데도 여전히 엄청난 양이 남아있었다. 몇몇 부분은 이미 스캔을 해놨기 때문에, 그 부분들은 이참에 다 비웠다. 지금도 여전히 전공을 살려 공부하고 일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옛날 자료들을 다시 들춰보는 일은 극히 드물다. 예전에는 일하다가 혹시 나라도 필요하면 어떡하지? 이런 불안감 때문에 모든 자료들을 다시 보기 위해 놔두었었는데, 몇 년간 일해보니 이전 자료들을 다시 찾는 것도 일이고.. 일단, 내가 더 이상 한국에 살지 않기 때문에 이 자료를 다 독일로 가지고 오는 것도 무리여서, 어쩌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은 더 쉽게 비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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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다 보니 느끼는 것은, 이전에 배운 지식만으로는 계속 일을 해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매일매일 끊임없이 배우고, 새로운 논문을 읽고 발전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이전에 배운 모든 지식이 쓸모없다는 것은 아니다. 단지 학부생때 폭넓게 쌓은 지식을 통해, 내가 지금 필요한 분야가 무엇인지 알 수 있고 필요한 부분의 지식만을 취사선택하여 발전시킬 수 있다. 즉 내가 지금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해 필요한 지식분야와 책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끔 맛보기 공부를 한 게 대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물론 그것조차 쉽진 않았지만 말이다. ㅠㅠ 기계과 공대생.. 배울게 많아 재미있었지만, 너무나 힘들긴 했다.
하루에 싹 정리를 끝내고 싶었지만, 양이 너무 많아 학부, 대학원 강의 자료와 논문은 다음날 이어서 찬찬히 살펴보고 이어서 비우기로 했다. 이렇게 내 20대의 대부분의 기록과 시간들이 정리되어 간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일할 적에도 여전히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로 수기로 적고 논문을 읽는 것을 선호한다. 그게 머릿속에 더 잘 저장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료들은 앞으로 몇년간 잘 놔두다가 내가 더 이상 동일한 방향의 프로젝트에서 일하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면 디지털 자료로 변환해서 남기고 파일을 비우도록 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집은 아마 몇 년 내에 서류더미에 쌓이게 될지도 모른다.
친정집 비우기 4번째 날의 대부분은 나의 오래된 책들과, 레포트가 주였다. 그 외에 자잘한 눈에 보이는 것들도 계속 비워나갔다. 이렇게 나는 나의 20대와 하루하루 천천히 작별인사를 하며 고이 정리하고 있다. 잘 보듬어주지 않을 과거이면 잘 보내주자. 내가 그때 열심히 살았다고 증명하고 싶어 쌓아 둔 서류며 숙제들은 결국에는 나의 미련일 뿐이다. 나는 나의 미련과 오늘도 작은 이별을 했다. 그리고 내일 더 큰 이별을 했으면 한다.
Day + 4 총결산
- 뮤지컬 도록 : 3권
- 캘린더 : 2개
- 물리책 : 4권
- 각종잡지 : 13권
- 만화책 : 5권
- 전공자료 : 30부
- 대학전공레포트 : 40개
- 파일철 : 10개
- 필기구 : 13개
- 오래된 화장품 : 4개
- 노트 : 15권
- 손목시계 : 2개
- 제품사용설명서 : 11권
- 카탈로그 : 3권
- 영어책 : 4권
- 만년필통 : 2개
- 공연팜플렛 : 5개
- A4 용지함 : 1개
- 양주병 : 1개
- 포토카드 : 50장
- 폴라로이드 사진 : 30장
- 잡동사니 : 5개
- 제품케이스 : 2개
- 대학원수업자료(폴더) : 3부
- A4 노트 : 19개
- 비행기피규어 : 1개
- 마그네틱 : 4개
- 클립 : 2개
Total : 284개
나만의 #비움프로젝트를 시작하고자 한다. 블로그에도 그 내용을 공유하고 싶지만, 글의 특성상 약간은 지저분해지지 않을까 싶어 다 사용한 물건들과 처분하고 나눔 할 물건들의 기록은 본 게시물의 댓글과 인스타그램에만 하고자 한다. 나의 #비움 프로젝트의 진행사항이 궁금하신 분은 @minimal_goco 로 방문해주세요!
곧 또 좋은 정보를 들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Dann Tschüss, bis demnächst. Auf Wiederseh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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