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이것저것 기록하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초등학교 때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숙제 때문이었지만, 그 이후에도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쭉 일기를 쓰고 있으니 말이다. 똑같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 생각과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는데, 나는 나의 그런 변화를 지켜보는 것을 좋아한다. 문득 기록이 없어도,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내가 동일한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변하였다고 느낄 때가 있긴 하지만, 그런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그렇기에, 본인이 직접 겪은 일임에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 혹은 그 기억의 일부는 변형된다. 그렇기에 나는 최대한 자세히 나의 느낌과 관찰된 것을 기록으로 남기려고 노력한다.
이런 일상의 기록을 남기는 것도 좋지만, 연구자로 살면서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본인의 연구를 기록하는 것이다. 연구의 결과만이 아니라 문득 떠오르는 아이디어, 실험 계획, 실험 결과 등등 말이다. 간혹 의식의 흐름대로 무언가를 적어 놓았는데, 당시에는 그 아이디어를 어찌 발전시켜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가 어느 날 그 방법을 발견하게 될 수도 있으니 잘 적어두자. 아이디어 노트를 따로 만드는 사람도 있긴 한데, 나는 같은 주제의 자료는 최대한 한 곳에 모으자 주의이다. 자료의 분류도 좋지만, 너무 세분화해서 분류하면 나중에 취합하기도 힘들고 잊어버리기도 쉽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마다 노트 한 권씩 쓰다 보니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연구노트만 해도 벌써 7권이다. 연구노트는 2011년부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였지만, 2011년과 2012년에 수행한 연구와 동일한 연구의 큰 과정들이 대부분 2013년에 수행되어서 독일로 올 때 2013년 분 노트만 챙겨 왔다. 2016년이 빠져 있는데, 이때 연구는 2015년 노트에 취합되어 있다. 그래서 사실 2015년 노트 이름을 2015-2016으로 수정해야 할 듯하다. 지금도 가끔 예전에 내가 했던 연구부분과 비슷한 부분을 알아봐야 하면 나의 기록들을 들춰본다. 생각보다 현재의 나는 지금도 과거의 나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살아가고 있다.
연구노트는 어떻게 써야 하나
연구노트를 쓰는 방법에 대해서 따로 정해진 방법은 없겠지만, 장기간 연구노트를 써오며 발전시켜온 나만의 노하우를 공유하고 싶다. 일단 설명을 위해 연구노트 샘플페이지를 만들어 보았다. 아래의 샘플 사진과 설명을 같이 보면 이해하기 좀 쉽지 않을까 싶다.
Tip 1. To-Do List 작성하기
매일매일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먼저 파악을 하는 것이, 일을 순조롭고 효율적으로 진행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To-Do List 는 당일 아침에 일을 시작하기 전에 작성하여도 되나, 가장 좋은 것은 전날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면서 다음날 할 일을 미리 정리해 놓는 것이 더 좋다. 이렇게 하면 자기 전에 다음날 무슨 일을 해야 할지 한번 더 복기하며 더 효율적인 플랜을 짤 수 있다.
나의 To-do List 를 보면, 각기 다른 색으로 표시된 항목들이 있다. 나는 연구 노트를 순수한 연구용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스케쥴러로도 사용하기 때문에, 공부나 자기개발, 생활 목표 등이 섞여 있다. 그래도 역시 연구가 가장 우선순위이기 때문에 일/연구와 관련된 항목은 더 눈에 잘 띄는 빨간색으로 마킹하고, 자기개발과 관련된 항목은 초록색으로 마킹하였다. 이렇게 서로 다른 색으로 마킹해놓으면, 나의 하루 목표 중 더 많이 차지한 항목이 어느 부분인지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Tip 2. 진행사항 체크하기
To-Do List 상단을 보면, 내가 사용하는 진행사항에 관련된 마킹법을 표시해 놓았다. 나는 여러 가지 항목을 쓰지 않고 보통 이 세 개의 마킹만 사용한다. 완료/진행중/중지 이렇게 세 가지로만 표시한다. 완료는 말 그대로, 오늘 내가 목표로 한 분량을 완료하였을 때 사용한다. 진행중은 내가 오늘 목표한 분량을 끝마치지 못하였지만, 바로 다음날이나 혹은 빠른 시일 내에 이어서 할 경우 사용한다. 중지와 같은 경우는 (1) 일을 시작하지 않았지만 현재 지금 계획한 일을 해야 할 필요성이 없어져서 잠시 중단한 상태, (2) 일을 어느 정도 진행하였지만 앞으로 계속 필요할지 판단이 안 서서 잠정적으로 중단한 상태,으로 나누어 사용된다.
내가 계획해 놓은 하루 목표에서 하나하나 완료로 빠르게 해야 할 일을 지워나가는 재미 때문에 일을 더 빨리 처리할 수 있다. 일을 더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더 많은 항목을 빨리 처리한다는 생각으로 일을 하는 편이다. 하루를 마감 할 때까지 아직 진행중에 머물고 있는 일이 있다면, 이것을 그 다음날 해야할 일로 빠르게 넘기면 된다. 오늘 내가 다 못한 일은 내일의 나에게 미루기...!! 그러니 내일의 내가 다 감당 못할 것 같으면 오늘의 내가 조금 더 힘내는 수밖에 없다. 전세계 대학원생 연구원 분들 화이팅.. :)
Tip 3. 우선순위 정하기
To-Do List 의 일에 관련된 항목 중 체크박스 왼편을 보면 숫자가 쓰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내가 오늘 해야 할 일의 우선순위를 써 놓은 것이다. 기본적으로 To-Do List 적을 당시에는 우선순위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적은 후에, 나중에 우선순위에 대해 생각하는 편이다. 우선순위를 적어 놓으면 내가 어떤 일부터 처리해야 하는지 명확해 지기 때문에, 한 번만 생각하고 그다음부터는 차례대로 일을 처리하면 된다. 보통 이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는 1-2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이 과정을 건너뛰면 일을 하나 마칠 때마다 매번 To-Do List에서 남은 해야 할 일 목록들을 돌아보고, 그 다음번 해야 할 일을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매우 비효율 적이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순서는 중요도로 정할 수도 있겠지만, 나와 같은 경우는 빨리 끝나는 일이나, 빨리 끝내야만 하는 순으로 정리하는 편이다. 빨리 끝나는 일 하나라도 빨리 처리하는 것이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 어떤 일들은 별로 중요하진 않으나, 그 날 바로 끝내버리는 게 좋은 일들이 있다. 예를 들어 회의록을 작성해야 되는 일 같은 경우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내용을 까먹기 때문에 중요한 미팅이나 회의가 있는 날이면, 회의 후에 회의록부터 빨리 작성하는 편이다.
우선순위를 정했다고 해서, 그것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하는 중간에 본인의 상황에 맞게 변경하는 것이 좋다. 위의 샘플을 보면, 3번 일이 아직 진행 중임에도 4,5번 일은 완료로 표시되어 있다. 이는 4,5번 일은 그날 완료가 되어야만 하는 일이었고, 논문 읽는 것의 중요도가 더 낮다고 판단되어서 일하는 중에 우선순위를 변경한 경우이다. 이렇듯 절대적인 것은 없다. 연구논문은 기본적으로 당사자의 효율을 높여주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기 때문에, 얽매이지 말고 편하고 빠르게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Tip 4. 한 일 기록하기
나는 현재는 몰스킨 365 다이어리를 사용 중이다. 한국에서는 ART 365+ 를 사용하였었는데, 여기에서 구하기 힘드니 현지에서 구매하기 좋은 제품으로 변경하였다. 몰스킨 제품과 같은 경우, 왼편에 시간이 표시되어 있는데, 내 스케줄 또한 여기에 맞춰 작성한다.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켠 시점으로 출근 시간을 적고, 정해진 일정은 검정색으로 내가 한 일은 파란색 펜으로, 휴식이나 개인적인 일로 시간을 쓴 경우는 빨간색으로 표시한다. 그러면 내가 하루를 어떤 식으로 보냈는지 쉽게 파악 가능하다. 내용을 자세히 적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각자 목적에 맞는 색을 정해서 기록하면 그 내용을 파악하는데 좋다. 여러 가지 색을 잘 활용해 보길 추천한다.
지금 샘플 모델에 개인적인 연구내용이 유출될까 봐 자세히 적지 않았는데, 최대한 자세한 내용을 적는 것이 나중에 도움이 된다. 회의를 하였으면, 중요 Feedback 이나 키워드 정도라도 적어놓고, 논문중 주의해서 봐야 할 부분이 있으면 논문 번호와 키워드를 적어 놓는다. (이건 나의 다른 팁인데, 논문을 모아놓은 하나의 폴더를 만들고, 각 논문별로 번호를 붙인다. 그러면 논문의 제목을 적지 않고 메모할 때 논문 번호만 적으면 돼서 간편하다... 웬만한 논문제목들은 다 너무 길어서, 연구노트의 너무 많은 지면을 차지한다.)
Tip 5. 포모도로 활용하기
이전 글에서 포모도로 학습법을 사용한다고 적었었는데, 연구노트 왼쪽 윗편을 보면 하루에 몇 뽀모를 달성하였는지 바를 정자로 적는다. 하나하나 적을 때마다 오늘 하루도 열심히 집중하며 산 듯해서 뿌듯해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연구자는 결국 본인이 스스로에게 당근도 주고 채찍도 들어야 하는 존재이기에 어쩔 수 없다. 나 스스로를 다독이는 방법중 하나일 뿐, 이 부분은 생략가능하다.
★ Tip 6. 과정, 성공 그리고 실패를 기록하기
아마 이것이 가장 중요한 팁일 것이다. 만약 실험을 기획하거나, 시뮬레이션을 하거나 그 어떤 과정 중에도 우리는 항상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이때 문제를 해결하게 되었을 때, 문제의 해결방법을 최대한 상세히 써놓길 바란다. 혹시나 실험이 실패를 한다면, 그 실패 요인 또한 잘 갈무리 해 놓아야 한다. 생각보다 유사한 문제는 다시 잘 발생한다. 그때, 이미 극복한 경험이 있다면 대부분 빨리 해결 가능하다. 단, 과거의 극복 경험을 잘 기억하고 있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위에 말했듯이 인간의 기억력은 그리 좋지 않고, 본인이 경험한 일이라 할지라도 생각보다 빠르게 잊어버린다. 그러니 제발 기록하라!! 언젠가 과거의 나에게 감사하게 될 날이 분명히 올 것이니!
위의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연구노트 잘 쓰는 Tip 모음!
1. To-Do List 작성하기 ★★★
2. 진행사항 체크하기 ★★
3. 일의 우선순위 정하기 ★★★★
4. 한 일을 기록하기 ★★
5. 포모도로 활용하기 (이 부분은 생략 가능)
6. 과정, 성공 그리고 실패를 기록하기 ★★★★★
각 항목의 중요도는 옆의 별의 개수와 같다.
나의 작은 경험이 세계 곳곳에서 연구하고 공부하는 여러분들께 조금이나마 도움의 되길 바라본다. 모두 힘내시고 오늘 그리고 내일도 더 좋은 연구를 하시길 :)
곧 또 좋은 정보를 들고 오도록 하겠습니다. Dann Tschüss, bis demnächst. Auf Wiedersehen!
여러분의 댓글과 공유, 공감은 많은 힘이 됩니다!
'독일 유학 및 취업 정보 > 박사과정 고군분투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일박사과정 D+3) 시간관리법2, 학습량체크하기 (0) | 2020.12.17 |
---|---|
독일박사과정 D+2) 독일에서 언어가 나에게 끼친 영향들 (0) | 2020.08.25 |
독일박사과정 D+1) 시간관리법1 , 집중 그리고 포모도로 학습법 (0) | 2020.08.19 |